세계 대전과 함께 발전한 다섯 가지 군사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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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대전과 함께 발전한 다섯 가지 군사 기술



군사 기술은 안타깝게도 항상 전쟁을 겪으며 발전했습니다.

특히 세계 대전은 역사에 남긴 상처만큼이나 군사 기술을 크게 성장시키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제1차 세계 대전은 오랫동안 정체되어 있던 과학 기술이 급격히 발전한 시기이며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무기가 개발된 시기이기도 합니다. 전장은 새로 개발한 무기를 실험하는 장소이자 새로운 무기를 개발할 동기를 부여했습니다.


지금부터 제1차,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사용되었던 몇 가지 무기에 관해 알아보겠습니다.




1. 화염방사기

 

화려함과 파괴력으로 가장 잘 알려진 무기입니다. 화염방사기는 제1차 세계대전보다 훨씬 전에 개발되었습니다. 아주 오래전 누군가가 다른 이에게 불을 붙이고 싶어 했던 것이죠. 서기 1세기 약 673년 때쯤 그리스 Heliopolis에 거주하던 Kallinikos(Callinicus) 는 “그리스의 불(Greek Fire)”이라는 것을 개발했습니다.


당시에는 직접 펌프질을 하고 호스 끝에 성냥을 갖다 대어 화염을 발사했습니다.

그리고 1,000여 년 동안 이 방식은 거의 바뀌지 않았습니다.



바르샤바 봉기 당시 건물에 화염을 발사하는 독일 화염방사기 부대

바르샤바 1945 사진 기록, 바르샤바 1985


화염방사기를 처음 무기로 사용한 것은 독일입니다. 화염방사기를 뜻하는 영어 단어 “flamethrower” 역시 독일어 “Flammenwerfer”를 그대로 번역한 것입니다.


독일 과학자 Richard Fiedler의 업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Richard Fiedler는 1901년 화염방사기 설계를 독일 군부에 제출했지만, 그의 설계도가 정식으로 채용되어 사용된 것은 10년 뒤인 1911년입니다. 독일 군부는 화염방사기 특수 여단(Flammenwerferapparaten)을 설립하여 화염방사기를 본격적으로 운용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화염방사기는 주로 참호전에 운용되었으며 제2차 세계대전부터 널리 사용되었습니다. 병사가 휴대하는 방식의 화염방사기를 독일이 처음 운용하기 시작했고 그 후 1942년 미국이 독자적인 화염방사기를 고안했습니다.



Churchill Crocodile

육군성 공식 사진작가 작품


또한, 널리 알려진 화염방사 전차는 제2차 세계대전부터 실험되었습니다.


독일은 “Flammpanzer” 전차와 “Panzer II Flamm” 전차를 보유하고 있었으며 이탈리아는 “L3 Lf Flame tank”, 일본은 “Type 95 Ha-Go”를 운용했습니다. 그에 대항하여 미국은 “M3 Satan”, 영국은 “Churchill Crocodile” 등을 운용했죠.


그러나 화염방사기는 아군에게도 위험한 무기였습니다.

화염방사기 배낭과 발사장치를 들고 다녀야 해서 기동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죠.


크기도 꽤 커서 쉽게 적의 표적이 되기도 했습니다.

화염방사기는 이러한 단점이 있었지만, 전쟁에서 가장 유명한 무기가 되었습니다.



2. 저격수

 

저격 소총은 참호전이 중심이던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널리 사용되던 무기입니다. 광학 조준기가 장착된 저격 소총을 처음으로 사용한 것은 독일 제국군입니다.


물론 양측 모두 저격 소총을 사용했지만, 특히 독일은 참호에서 벗어나는 연합군 병사를 정확히 저격했습니다. 프랑스와 영국은 이러한 사격이 요행으로 명중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으며 정확한 사격 기술을 가진 독일 저격수와 성능이 뛰어난 조준경은 큰 명성을 얻게 되었습니다.


독일 저격수 부대에 자극을 받은 영국은 저격 특수 부대를 결성하게 됩니다. Hesketh Hesketh-Prichard 장군은 저격, 관측, 정찰을 훈련할 훈련소를 창설하여 연합군에서 국적을 가리지 않고 훈련생을 모집하였습니다.



스탈린그라드에서 러시아제 PE 조준기가 장착된 Mauser 98k를 사용하는 독일 저격수

Bundesarchiv, Bild 169-0526


국가별로 가장 유명했던 저격 소총은 독일의 Mauser Gewehr 98, 영국의 Pattern 1914 Enfield와 Lee-Enfield SMLE Mk III, 캐나다의 Ross Rifle, 미국의 M1903 Springfield, 러시아의 M1891 Mosin-Nagant입니다.


양 대전 사이 잠잠했던 시기에도 저격수는 훈련을 멈추지 않았으며 제2차 세계대전 첫 전투에서도 큰 활약을 했습니다. 저격수가 활약한 전투 중 가장 유명한 전투는 아마 스탈린그라드 전투일 것입니다. 소련 저격수의 활약으로 폐허가 된 도시에서 독일군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있었습니다. 스탈린그라드 전투 후 독일은 다시 저격수 부대 결성하여 훈련했습니다.



3. 수류탄

 

화염방사기와 같이 수류탄의 역사도 1,00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기원전 700년대 초반에서 중반, “그리스의 불”이 발명되었을 때쯤 단순한 형태의 수류탄이 동로마(비잔틴) 제국에서 사용되었습니다. 비슷한 시기 중국 송나라에서 사용한 “진천뢰”는 하늘을 뒤흔드는 번개라는 뜻을 가졌으며 도자기나 금속 용기에 화약을 채운 수류탄이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까지만 해도 수류탄은 쓸모없는 물건 취급을 받았고 영국 육군성은 1902년 수류탄을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공식 발표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약 2년 후 영국 국방성은 실용적인 수류탄을 개발하게 됩니다.



Mills N°36 수류탄과 가스 확인장치 설계도

I, Jean-Louis Dubois


제1차 세계대전에서 수류탄이 사용된 것은 전쟁 발발 후 몇 년이 지나서입니다.

영국 군부는 Marten Hale의 수류탄 사용 주장을 1913년에서야 받아들였습니다.


Mills 수류탄은 가장 처음 개발된 현대적인 세열수류탄이며 1915년 참호전에서 처음 사용되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제작된 수류탄은 약 75,000,000개이며 이때 제작된 수류탄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도 사용되었습니다.


처음 개발된 수류탄은 신관 작동 7초 후에 폭발해서 적 병사가 도망가거나 수류탄을 되던지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1940년 프랑스 공방전에서는 폭발 시간을 단축한 수류탄을 개발하여 사용했습니다.


4. 초기 대공포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영국군은 대공포의 필요성을 깨달았습니다. 영국 정부는 영국령 제도 해안에 특수한 포를 장착한 포탑을 빼곡히 세웠으며 해군 시설에도 이러한 포탑이 설치되었습니다.


곧 다른 국가에서도 대공포를 사용하게 되었고 머지않아 제1차 세계대전에 참여한 모든 국가에서 대공포가 사용되었습니다. 당시 대공포 운용의 가장 큰 문제점은 다룰 수 있는 병사가 극히 드물었다는 것입니다. 대공포는 해안 제방이나 임시 초소에서 널리 운용되었지만 목표물 조준이나 탄도 계산을 할 수 없었습니다.


양 대전 사이 영국에서 제작된 대공포 사격 교범에는 다섯 가지 대공포 조작 방법을 다루고 있으며 이를 참고하여 대공포 설계가 개선되기도 했습니다.



1943년 알제리 해안선에서 스웨덴 Bofors 40mm 대공포를 설치하는 미군

Maurice, cap sur le Hoggar, de l'Atakor à la Taessa.Lecarteldz.


1940년 영국 본토 항공전 당시 많은 대공포가 운용되었으며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독일 Krupp사에서 당시 가장 뛰어난 대공포중 하나였던 FlaK 36을 제작하기도 했습니다.


Flak 36은 경전차와 중형전차에 치명적인 피해를 줄 수 있었으며 일부 중전차까지 위협하는 화력을 자랑했습니다.


1943년 형벌 작전 후 저공 비행하는 항공기를 포탄 한 발로 격추할 수 있는 대공포 사격 통제 장치의 필요성이 대두하였습니다.


새로 개발된 사격 통제 장치는 목표물을 설정한 후 궤적과 거리를 계산하여 대공포에 전자 신호를 전달해 사수가 어떤 목표물에 발사할지 선택하기만 하면 되었습니다.



5. 전차

 

전차를 빼놓고 넘어갈 순 없죠. 전차 역시 고대로부터 유래되었습니다. 보병을 보호하고 이동할 수 있으며 강력한 공격을 퍼붓는 장비를 원하는 것은 당연하겠죠. 전차에 적용된 혁신적인 기술은 바로 내연기관, 장갑판, 무한궤도입니다.


전차는 제1차 세계대전에서 운용하기 위해 영국과 프랑스에서 각각 같은 시기에 개발되었으며 오랫동안 지속되던 서부 전선 참호전을 끝내려 개발된 무기였습니다. 그러나 처음으로 실전에 투입된 것은 1916년 9월 15일 솜 전투입니다.



연합군과 추축군이 전차를 각 3,000대씩 투입하여 역사상 최대 규모 전차 전투로 기록된 쿠르스크 전투

Bundesarchiv, Bild 101III-Merz-014-12A / Merz 


전차를 뜻하는 “Tank”는 영국이 육상함을 전장에 투입하기 전에 적에게 노출하지 않기 위해 붙인 이름입니다. “Tank”라는 이름의 유래에는 몇 가지 가설이 있습니다.


영국 전차 공장에서 전차를 제작하던 노동자들에게 물탱크를 제작하는 것이라고 속여 적 공작원이 전차 계획을 빼돌리지 못하도록 했다.


“Tank”라는 이름은 영국 수상 윈스턴 처칠에게 제출한 비밀 무장 차량 보고서에 처음 사용되었다.

윈스턴 처칠 전기 중 하나에 따르면 전차 계획을 노출하지 않기 위해 “러시아로 보낼 물 저장 장치”라고 부르던 것이 “물탱크”로 바뀌었을 수도 있다.


당시 영국과 프랑스는 전차 수 천대를 제작했지만, 전차의 효율을 의심했던 독일은 20여 대만을 제작했습니다.



독일 선전 영상 촬영을 위해 정렬한 제503 중전차 대대 (s.H.Pz.Abt. 503) Tiger II 전차

Bundesarchiv, Bild 146-1975-102-14A / Hamann


전차 전술은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빠르게 발전했지만 부분적 배치, 기계적 결함, 낮은 기동성 등 문제가 있어 전차의 효율을 두고 많은 논쟁이 있기도 했습니다.


참호전을 끝내는 것이 전차의 목적이었으나 그 역할을 충분히 소화하지 못한 전차 계획은 결국 폐기되고 맙니다.그러나 연합군과 독일 모두 전차의 가능성을 인식했으며 장래에 어떤 역할을 하게 될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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