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초의 전차를 알아보자.
- 밀리터리
- 2017. 3. 10. 00:00
세계 최초의 전차를 알아보자.
워게이밍은 최근 링컨 전차 기념회(Lincoln Tank Memorial Group)에 기부한 적이 있습니다. 링컨 전차 기념회의 목표는 1916년 최초로 전차를 생산한 포스터(Foster) 공장 지구에 기념 시설을 건설하는 것입니다.
오늘은 리처드 풀렌(Richard Pullen)이 해준 이야기를 전차장 여러분에게 들려드리려 합니다. 리처드의 조부 조지 앳킨(George Atkin)은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 링컨 지역에 있는 윌리엄 포스터 전차 생산 공장(Willam Foster and Co)에서 근무했다고 합니다.
1915년은 제1차 세계대전의 광기가 최고조에 달하던 시기였습니다. 끔찍한 새로운 전투 방식인 참호전이 등장하여 수많은 병사가 목숨을 잃었죠. 지난 100년간 참호전 등장과 관련된 글이 수없이 공개되었지만, 한 단어로 그 이유를 설명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바로 “기계화”죠. 제1차 세계대전은 사상 최초로 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두 세력이 맞붙은 전쟁이었으며 양측 모두 가장 효과적이고 기술적으로 발전한 무기를 사용했습니다. 잠수함, 항공기, 명중률이 뛰어난 대포, 고성능 폭탄, 독가스 등이 전쟁 당시 일상적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다양한 무기가 개발되었습니다. 그중 참호전에서 가장 유용하게 사용된 것은 기관총과 철조망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만약 누군가 참호에서 나와 위험지대를 건너려 한다면 수많은 철조망을 건너야 하며 철조망을 건넜다 하더라도 기관총의 포화 속에 쓰러지고 말 것입니다.
해결해야 하는 문제는 단 하나였습니다. 바로 기관총 사격을 피해 철조망을 통과하는 것이었죠. 이 문제가 바로 “참호의 난제(The Riddle of the trenches)”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만 하면 끝이 없는 참호전에서 벗어나 전투를 진행할 수 있게 되며 승리에 한 걸음 더 가까워질 수도 있었습니다. 과연 철조망과 맥심 기관총의 포화를 극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 세계 최초의 전차 “Mother”
참호의 난제를 해결할 방법은 영국 링컨(Lincoln) 지방의 작은 농기계 제조사인 윌리엄 포스터(William Foster and Co Ltd) 사에서 나왔습니다. 포스터 사는 규모는 작지만 뛰어난 품질과 빠른 생산 공정으로 잘 알려진 회사였죠. 가장 처음으로 생산한 것은 당시 새로 구성되었던 영국 해군성 육상함위원회(Admiralty Landships Committee)의 주문으로 생산한 Tritton Trench Crosser였습니다.
아이디어는 좋았으나 위원회가 원하던 것은 아니었죠.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바퀴를 사용했다는 것이었습니다. 바퀴는 이프레(Ypres) 지역과 같이 철조망이 쳐있는 곳이나 포탄으로 패인 구덩이를 통과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죠. 위원회에서 원한 것은 철조망을 부수며 이동할 수 있는 차량이었습니다. 철조망을 돌파하려면 차량에 궤도를 장착해야 했습니다.
연합군과 독일군은 궤도 차량의 필요성을 깨닫고 생산 경쟁에 들어갔습니다.
링컨 지역 버튼 공원의 제방을 통과하는 Mother
▶ 링컨 시험장 – 1918년 중반
영국 링컨 지역에 있는 윌리엄 포스터 공장에서 참호 돌파용 최초의 궤도 차량을 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Little Willie라 명명했죠.
버튼 공원에서 주행 시험 중인 Little Willie
Little Willie에 장착한 궤도는 원래 미국에서 제작한 상업용 궤도였습니다. 평지에서 운용하는 농업용 경량 트랙터에 장착할 수 있도록 생산한 궤도죠. 상업용 궤도는 포스터 사가 기획한 차량의 중량이나 출력은 감당할 수 없어 곧 사용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당시 포스터 사의 상무이사를 맡고 있던 윌리엄 트리튼(William Tritton)의 기획으로 단순하고 튼튼한 궤도가 새로 제작되었습니다. 새로운 Tritton 궤도를 장착한 Little Willie에는 포스터 사가 1914년부터 제작한 Foster Daimler 트랙터의 105마력 Daimler 엔진과 변속 장치를 장착하였습니다.
여러 가지 반대 의견이 있을 수도 있지만, Little Willie나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에서 생산한 전차에는 홀트(Holt) 사를 포함한 미국제 부품이 전혀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Little Willie는 이후 제작된 전차의 시험대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양한 아이디어와 설계 방식을 시험했죠. 원래는 차체 중간 부분에 설치한 엔진 위에 포탑을 장착하려 했으나 포탑에 관한 자료는 전혀 남아있지 않은 걸로 보아 계획이 즉시 폐기된 것 같습니다.
제작 중인 신형 Mk. IV 전차
Little Willie의 설계는 매우 현대적입니다. 차체 양옆에 궤도가 달려있고 상단에 포탑이 장착되어 있는 등 현대 전차와 같은 방식으로 제작되었죠. 하지만 주행 시험에서는 성능이 그리 좋지 않았습니다.
링컨 지역에 있는 버튼 파크(Burton Park)와 햇필드 하우스(Hatfield House)에서 진행한 시험 주행에서는 모형 포탄이 관통되기도 했죠. 참호를 통과할 수 있는 성능은 갖추지 못했습니다. 좁은 참호도 건널 수 없었으니 독일군이 구축한 거대한 요새와 같은 참호는 당연히 통과하지 못했겠죠.
따라서 개발만 되었을 뿐 실제 생산에 들어가지는 못했습니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Little Willie는 최초의 전차가 아닙니다. 개발과 동시에 폐기되었으니까요. 하지만 그 뒤를 이어 새로운 개발 기획이 등장했습니다.
Little Willie와 윌리엄 트리튼(William Tritton)
철조망을 부수며 참호를 돌파하는 차량의 궤도는 크기가 커야 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독일군의 집중포화를 받게 되겠죠. 따라서 궤도 모양을 납작한 마름모꼴로 변경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진정한 세계 최초 전차의 전설적인 외관이 탄생한 것이죠.
마름모꼴 전차는 1916년 포스터 사의 공장에서 처음으로 제작되었으며 제작 초기에는 공장에서 “주문명 AX”로 불렸다고 합니다. 군부로 넘어갈 때 ‘His Majesties Landship Centipede’라고 이름을 변경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군부나 민간인 모두 “Mother”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Mother는 링컨 지역 포플턴 필드(Poppletons Field)에서 시험 주행을 거쳤으며 그 후에도 버튼 파크 근처에서 엄격한 시험을 수차례 거쳤습니다. 1916년 2월 2일에는 햇필드 파크에서 런던 북부로 이동하여 영국 육군성 공식 시험 주행을 거쳤죠.
육군성 시험 주행에서 참호와 늪을 멋지게 돌파하여 당시 시험 주행을 참관한 군부 인사 중 한 명은 즉시 포스터 사에 3,000대 생산 주문을 넣자고 제의했다고 합니다. 물론 현실적인 제의는 아니었습니다. 시험 주행과 실전 운용은 분명 다르니까요.
어쨌든 육군성에서는 포스터 사에 양산 주문을 했지만, 포스터 사는 규모가 작아 단독으로 주문을 소화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뉴캐슬(Newcastle), 글래스고(Glasgow), 버밍엄(Birmingham)에 있는 공장을 사들여 생산을 시작했습니다.
윌리엄 포스터 사 작업장에 있는 Little Willie, 1915년 촬영
해결할 수 없어 보이던 참호의 난제를 링컨 지방의 작은 농기계 공장에서 해결한 것입니다. 생산이 완료된 Mk I 전차는 즉시 서부 전선에 투입되었지만, 당시 사용할 수 있는 원자재만으로 급히 생산한 전차이므로 1916년 9월 15일 처음 투입된 플레흐-꾸흐스레트(Flers-Courcelette) 전투에서는 그리 활약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1916년 9월 플레흐-꾸흐스레트(Flers-Courcelette) 전투에 투입한
Mk. I C13. 당시 중위였던 존 대시우드 경(Sir John Dashwood)이 전차장으로 탑승
105마력 Daimler 슬리브 밸브 엔진은 당시 출력이 가장 높은 휘발유 엔진이었지만, 사실 전차의 아킬레스건과도 같았습니다. 최초의 전차는 중량이 약 30톤에 달해 단단한 지면에서 이동하는 것도 어려웠죠. 구덩이나 늪지대는 말할 것도 없었습니다.
따라서 형편없는 추중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장갑 두께를 8mm 이하로 제한해야 했죠. 8mm 이상으로 제작하면 전차 중량이 증가하여 이동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Daimler 엔진의 또 다른 문제는 연료 펌프가 장착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었습니다. 연료 펌프가 없어 연료가 배출 팬에서 출렁거리고 크랭크축 한쪽에 가득 찼습니다.
평지 주행 시에는 문제없으나 구덩이와 같은 45도 이상 경사지를 통과할 때는 연료가 모두 엔진 뒤쪽으로 흘러 엔진 앞쪽에 연료 공급이 중단되고 멈추게 됩니다. 차체 가장 높은 곳에 연료 탱크를 설치하여 중력에 의존해 기화기로 연료를 공급하는 방식이었죠.
이러한 방식은 이론상으로는 문제가 없었으나 독일군이 노리는 것은 당연하게도 연료 탱크가 있는 전차 앞쪽입니다. 따라서 전차에 화재가 자주 일어났으며 이러한 문제가 Mk. I 승무원은 물론 독일군에도 곧 널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Mk. I은 전장에 급히 투입된 전차입니다.
링컨 시험장에서 시험 주행을 꼼꼼하게 했다면 당시 발생한 문제 대부분을 해결할 수 있었겠지만, 서둘러 생산하여 전장에 무리하게 투입하였으므로 실전에서 여러 가지 문제가 발견되었고, 그로 인해 수많은 전차병이 목숨을 잃고 말았습니다.
다행히도 1917년 11월 20일 캉브레(Cambrai) 전투에 투입된 Mk. IV에서는 이러한 문제가 대부분 해결되었습니다. Mk. IV는 MK. I과 외관은 비슷하지만, 확장된 승무원 승강구, 새로운 기어 등 많은 점이 개선되었습니다.
또한, 연료 펌프를 설치하여 연료 탱크를 더욱 안전하게 전차 후면에 설치할 수 있었죠. Mk. IV를 통해 전차의 장단점이 명확히 드러났습니다.
1918년 제1차 세계대전 종전 무렵에는 Mk. V가 개발되었으며 포스터 사에서는 Medium A Whippet을 개발했습니다. 그리고 전차 없이 치르는 전투는 상상도 할 수 없게 되었죠.
독일군이 노획하여 개량한 포스터 사의 Medium A Whipp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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